Alltag, Hi-kon, Quatsch

하나 누나는 하늘 나라에서 언제 와요

희건이에게 하나 누나는 늘 있어왔던 사람이다.
희건이는 걷기도 전부터 우리와 함께 하나의 묘지를 찾았다. 아장 아장 걷고 말을 한 두마디 할 수 있을 때는 하나의 비석을 쓰다듬으며 “하나 누나, 안녕!”하고 인사를 했다. 아마 그 때는 엄마 아빠가 하나라고 부르는 대상이 그 비석이라고 생각했던 것 같다. 언제부터 집에 있는 아기 사진이 하나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 때 하나가 추상적인 존재에서 구체적인 육체를 가진 사람으로 인식한 것 같았다. 더 이상 비석이 하나 누나가 아니었다. 이후 우리 집에 누군가 방문을 하면 희건이는 하나의 사진을 가리키며 자신의 누나라고 알려주었다.

몇 달 전에 희건이가 죽음이란 말을 배웠나보다. 우리에게 “하나 누나는 죽었죠?”라고 물었다.
“죽었다는 말은 엄마 아빠를 슬프게 만드는 말이란다. 하나는 하늘 나라에 예수님과 같이 있어.” 라고 대답했다.
죽음을 이해한 것인지, 아니면 하늘나라에 있다는 말을 죽음과 같은 의미로 통합한 것인지 확인 할 수 없었다. 내 짐작에 지금 함께 있지 못하고 다른 곳에 있다는 것과 죽음이라는 것이 같은 용도로 사용된다고 받아들인 느낌이었다. 하나가 지금 곁에 없는 사람이라는 것을 스스로 납득시키고 오히려 우리에게는 예수님이 하나 누나와 너무 함께 있고 싶으셔서 하늘로 데려 가신 것이라고 설명했다.

희건이는 가끔 우리에게 동생을 원한다는 의사를 표시했다. 형제가 없어서 외로웠나보다. 우리 부부는 그저 기다려보자는 대답만 주었다. 그러던 희건이가 동생이 필요 없단다. 대신 하늘 나라에서 하나가 돌아오면 된단다. 그럼 자신과 함께 놀 수 있다며 하나와 함께 가지고 놀 장난감을 챙기고, 하나와 함께 앉을 식탁 자리를 정하고, 하나와 같이 할 수 있는 것들을 계획했다. 그리고 우리에게 물었다.

“하나 누나는 하늘 나라에서 집으로 언제 와요?”

누나는 오지 않는다는 말이 내 입 끝에 맺혔다. 뱉지 않고 삼켰다.
지금은 올 수 없다는 대답을 겨우 꺼냈다.
나중에 우리가 하늘 나라로 가거나 예수님이 다시 이땅으로 돌아오실 때 우리 네 식구 모두 다시 만날 수 있다고 말을 더했지만 아들은 슬퍼했다.

희건이는 그 순간 하나의 죽음을 경험하는 것 같았다.
그런 아들을 보는 나는 다시 딸의 죽음을 경험한다.
아들의 마음 안에 살아있었던 딸의 죽음이다.
매번 그것을 확인 할 때마다 내 숨이 멎는다.
이게 내 운명이겠지.

우리 가족은 엄마 아빠 희건이 이렇게 셋 뿐이다. 원래는 넷인데 지금은 셋이다.
희건이의 마음에도 이제 하나의 빈자리가 생긴 것 같다. 다시 채워지지 않는 자리.

예수께 기도한다.
오늘밤 꿈에서라도 우리 네식구 함께 만나게 해주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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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am Yoonsun Yang. My friends call me “Sunny”. I was born in Seoul, South Korea in 1979, live in Bielefeld, Germany. I am a Photographer. Camera is my main tool but I do not make just Photo, but also Fotogram, Installation & Concept art. This Blog is a presentation of my art work and I share my days with photo.